행복한 숲숲과 나무 이야기

숲이 옷을 갈아입는 계절입니다. 긴 겨울이 오기 전 건네는 가을 산의 단풍 손 인사는 언제나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싱그러운 푸른색에서 탐스러운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갈색으로 다채로운 얼굴을 자랑하는 단풍. 그 화려한 단풍의 비밀을 이야기해 볼까요?

보는 이의 마음을 물들이는 단풍

두 그루 단풍나무 너무 좋아서
대숲에 옮겨다가 심어 놓으니
서리 취해 한 조각 붉은 모습이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 조준 (1346~1405)의 《송당집》 제1권, 「단풍나무를 읊다」

고려시대의 문인 조준은 깊어지는 가을, 고즈넉하게 물든 단풍잎을 보며 「단풍나무를 읊다」 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잎에서 느꼈을 시인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화려한 옷으로 바꿔 입은 후 찬란히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며 가을에 한껏 취하고픈 마음이었을까요.

과거부터 단풍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시심(詩心)을 사로잡은 자연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여름날 푸르던 잎들이 찬바람이 불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지난 시절과 앞으로 다가올 날을 생각나게 했을테니까요.

시인 뿐 아니라 화가, 음악가 등 많은 예술가들은 단풍을 통해 영감을 받아 다양한 예술작품을 남겼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단풍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나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단풍은 더 마력이 있지요. 무슨 의미냐고요? 우리 단풍은 다른 나라의 단풍보다 더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단풍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먼저 단풍이 만들어지는 이유부터 알아볼까요? 가을이 되면 초록의 잎사귀가 울긋불긋하게 물드는 이유는 각각의 나뭇잎에 함유된 ‘안토시아닌(Anthocyanin)’ 혹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색소 때문입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나무는 본격적으로 월동준비를 시작해요. 나무의 월동준비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나무도 겨울을 지낼 양분을 충분히 저장해두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일까요?

비밀은 떨켜층에 있습니다. 떨켜층이란 나뭇잎과 잎자루 사이에 들어있는 특수한 조직을 말합니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떨켜층을 만들어 냅니다. 떨켜층이 만들어지면 잎에서 만든 양분이 줄기나 뿌리로 전달되는데 방해를 받습니다. 즉, 떨켜층이 없는 여름에는 많은 양분을 잎으로 보낼 수 있어 엽록소 활동이 왕성해집니다. 그래서 잎이 선명한 초록빛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헌데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떨켜층이 생성되면,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만들어 낸 녹말(탄수화물)을 줄기로 보내지 못하고 나뭇잎 안에만 갖고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잎의 초록빛은 점점 사라지고, 여름내 엽록소로 인해 보이지 않던 카로틴(Carotene) 혹은 크산토필(Xanthophyll) 같은 색소가 나타나 나뭇잎이 노랗거나 붉게 변하게 됩니다.

나뭇잎의 색소에 따라 단풍 색도 달라져

붉은색, 노란색, 갈색 등 단풍의 색깔은 저마다 다릅니다. 단풍색이 다른 이유는 나뭇잎이 각각 지니고 있던 본래의 성분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어 일조량이 줄어들며 엽록소가 적어지게 되면 여름철 내내 엽록소가 내는 초록빛에 가려져 있던 나뭇잎의 본래 색소 성분들이 점차 자신의 진짜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 결과 나무는 가을이 되면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은행나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두나무, 생각나무, 자작나무는 노란색으로, 신나무, 옻나무, 담쟁이덩굴, 화살나무는 붉은색으로 말이죠. 노란 단풍이 되는 나무는 크산토필 성분이, 붉게 물드는 나무의 경우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붉은 단풍이 드는 나뭇잎에 가득한 안토시아닌 성분은 나무를 보호하는 방충제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안토시아닌을 품은 나뭇잎이 떨어져 나무 주위에 쌓이면 안토시아닌 성분이 땅 속으로 흡수돼 겨울잠에 드는 나무를 지켜주는 것이죠. 나무 입장에서 보면 단풍이 드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지혜로운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유달리 아름다운 우리나라 단풍

사실 단풍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게 아닙니다. 특별히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지는 조건이 따로 있는데요. 바로 우리나라 같은 환경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요?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요인은 온도와 햇빛, 그리고 수분 공급입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하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또한 하늘은 청명하고 일사량(日射量)이 많아야 합니다.

특히 붉은빛 색소 안토시아닌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범위에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야 가장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다고 해요.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은, 알맞은 습도 환경이 주어져야 아름답게 물든 붉은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비가 많이 내리는 환경도 단풍에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기온이 떨어진 상태에서 비가 오면 잎이 충분히 물들기 전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너무 건조할 경우에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타버리고 말죠.

이런 요인들 때문에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단풍이 곱게 물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환경으로 꼽힙니다.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상 환경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고 해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동북아시아 혹은 미국 북동부지역 정도가 있답니다.

단풍 숲에서 치유 효과를 누려요

아름다운 단풍이 존재하니, 자연스레 단풍놀이 문화도 생겨난 걸까요? 날씨가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단풍놀이를 떠날 최적기를 찾아보곤 합니다. 절정으로 물든 단풍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죠. 나무가 빼곡한 산에 올라 형형색색의 단풍나무에 둘러싸이는 것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힐링’입니다.

가을이 오면 해마다 사람들이 단풍놀이를 떠나는 데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산림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천연 치료제’ 역할을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가벼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숲을 가까이 하면 우울감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이 감소해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겠죠. 아름다운 산림이 주는 뛰어난 정서안정 효과를 말입니다.

10월에는 산으로 떠나보세요.
일상에 지친 마음을 아름다운 단풍이 어루만져 줄 거예요.
지금,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