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숲시험림 속으로

햇살이 대지와 열렬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계절입니다. 햇살은 자신의 모든 빛을 땅에 비추고, 땅은 그 햇살을 여지없이 받아들이죠. 햇빛과 땅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일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 사이에 초록이 짙은 숲과 나무가 더해지면 자연의 대화는 상상 이상으로 풍성해지죠. 그 반가운 숲과 나무를 찾아 다시 홍릉시험림에 걸음했습니다. 그곳에서 취재진은 특별한 나무를 만났습니다. 오직 이곳, 홍릉시험림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들이었죠.

▲흰배롱나무에 핀 꽃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꽃들이 먼저 반기는 홍릉시험림

이곳에 오면 언제나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평화롭다’는 감각입니다. 싱그러운 풀과 꽃으로 채워져 있는 홍릉시험림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용한 평온을 건넵니다. 이날도 역시 그랬습니다.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한 달 만에 찾은 홍릉시험림에는 많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흰배롱나무가 자신의 흰 꽃으로 수줍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수피가 벗겨지는 모습 때문에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는 흰배롱나무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100일 동안 반복한다고 해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마치 홍릉시험림에 온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반기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 같네요.

흰배롱나무의 환영인사를 받고 나면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행나무는 마치 부채처럼 잎이 활짝 펼쳐진 모양을 하고 있죠. 은행나무가 실은 침엽수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말에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잎을 자세히 보면 궁금증이 풀립니다. 은행나무의 부채꼴 잎은 뾰족한 잎들이 모여 만든 결과라서 활엽수가 아닌 침엽수로 구분됩니다.

▲홍릉시험림 초입에서 만난 은행나무

미리 파악하는 은행나무의 성별

2010년 즈음만 해도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많이 쓰이곤 했습니다. 가을에 만나는 노란 은행나무 단풍은 ‘황금길’을 걷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했죠. 하지만 열매에서 풍기는 특유의 악취 때문에 점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데,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맺습니다. ‘그렇다면 가로수를 수나무로만 심으면 악취 문제에서 해방되지 않나요?’라고 질문하실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은행나무의 암수 구분은 나무를 식목하고 20년 후 열매가 열리면 그 때야 판별이 가능하다네요.

헌데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들이 은행나무 1년생 묘목에서도 성감별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어요. 2011년, 연구진들은 은행나무 유전자분석을 통해 일찍이 성감별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2014년 국제 특허를 받았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들의 노력이 담긴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죠.

▲모감주나무는 키가 크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한 눈에 들어옵니다.

번영을 상징하는 ‘모감주나무’

다른 숲이 아닌 바로 홍릉시험림에 있어서 더 의미 있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들에 의해 개체수가 많아졌거나, 표본목 역할을 하는 나무가 그것이죠.

개체수가 많아진 나무는 모감주나무가 대표적인데요. 영문명으로 ‘골든레인 트리(Goldenrain Tree)’로 불리는 모감주나무는 그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 꽃이 피면 마치 황금비가 내리는 듯 합니다. 본래 중국에서 자란 모감주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계기는 정말 재밌어요. 열매를 자세히 보면 검고 작은 씨앗이 큰 포에 감싸여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종자가 퍼졌을 때도 이 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씨를 감싼 포가 배 역할을 해 중국에서 안면도로, 거센 바닷물살을 헤치고 도달해 뿌리를 내렸거든요.

▲검은 씨앗을 감싼 넓은 포

사실 모감주나무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으로 분류됩니다. 그렇기에 자생지의 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죠. 그런데 이 귀한 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꽤 많이 볼 수 있어요. 바로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진들 덕분입니다. 유전자분석을 통해 엽록체를 파악해서 대량 증식에 성공해 국내에서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나무가 됐다고 합니다. 모감주나무의 꽃말은 ‘번영’ 인데요.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기념 식수한 나무가 바로 모감주나무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기를 기원한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부계혈통을 이어받은 정이품송 후계목, 정말 잘 생겼죠?

아비나무의 혈통을 이어받은 정이품송 후계목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나무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입니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습니다. 1464년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해 ‘연(輦) 걸린다!’라고 외쳤답니다. 그런데 소나무가 이 말을 알아들은 듯 가치를 척 하고 들어 올려 길을 내어줬고, 그걸 본 세조가 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이라는 품계를 내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만큼 정이품송은 현재 가지가 많이 떨어지고 병해에 시달리는 등 과거와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이를 안타까워한 지금의 후손들이 정이품송의 후계목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정이품송의 수꽃과 강원도에서 선발된 형질이 뛰어난 수형목의 암꽃을 인공 교배해 종자를 얻어 파종한 후 묘목을 키워 10년 된 나무를 식재했습니다. 그 나무가 바로 홍릉시험림에 있는 정이품송 후계목이에요.

이 후계목은 정이품송의 역사성을 고려해 부계혈통 보존기술로 생산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후계목이 교배될 때 속리산 보은 군수와 삼척시장이 혼주로 나서고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아 전통혼례로 진행됐다고 하네요.

▲구상나무

크리스마스트리, 원래 우리나라가 군락지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집집마다 멋진 트리를 장식하곤 하죠. 많은 분들이 트리가 서양에서 넘어온 서양의 나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시초는 우리나라라고 해요. 트리로 많이 쓰이는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의 높은 산에 서식하는 상록교목입니다. 수형이 안정적이어서 이 나무를 보는 사람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될 만큼 매력적인 자태를 자랑하죠. 88올림픽 당시에는 심벌(Symbol) 나무로 지정될 만큼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원래 구상나무는 추운 곳에서 잘 자랍니다. 이 말은 갈수록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죠. 192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한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종자가 미국으로 넘어간 후, 구상나무는 개량품종 돼 크기는 더 작아지고 모양은 더 정갈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애용하는 크리스마스트리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들어진 구상나무를 미국에서 역으로 수입하는 상황이에요. 기후변화로 구상나무의 군락지가 점점 줄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사라져가는 나무를 잘 보호하자는 의미로 구상나무를 홍릉시험림에 식재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도 외면하지 않고 계속 상기하자는 의미라고 볼 수 있죠.

▲특별한 수종이 가득한 홍릉시험림의 여름 풍경

홍릉시험림을 거닐다보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고 각각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수종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숲과 나무만큼 우리를 이롭게 하는 존재도 없죠. 홍릉시험림은 숲이 우리를 어떻게 이롭게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또 나무가 더 푸르게 잘 자랄 수 있도록 365일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는 국립산림과학원의 노력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귀중한 ‘보물숲’입니다.
다음 호에는 경기도 수원시험림으로 떠납니다. 그곳에는 또 어떤 수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